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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 근심이 없어질 것이다

  • 권영오 기자
  • 기사 입력 : 2026-06-11 15:28:50
  • 수정 시간 : 2026-06-11 15: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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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 대하여…>

▷ AI로 생성한 이미지
 

『도덕경』 제20장(第二十章)

絕學無憂(절학무우)
-  배움을 끊어라, 근심이 없어지리니

唯之與阿,相去幾何(유지여아, 상거기하)
- 예와 아니오가 서로 다른 것이 얼마며

善之與惡,相去若何 (선지여오, 상거약하)
- 좋음과 싫음은 다른 것이 또 얼마인가? 

人之所畏,不可不畏(인지소외, 불가불외
) -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나 또한 두려워할 수밖에 없네.

荒兮,其未央哉(황혜, 기미앙재)
- 황량하도다, 그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음이여.

衆人熙熙,如享太牢,如春登臺(중인희희, 여향태뢰, 여춘등대)
- 뭇사람들은 모두 희희낙락 즐거워하며, 큰소를 잡아 잔치를 벌이는 것 같고, 봄날 누각에 오르는 것 같은데

我獨泊兮,其未兆(아독박혜, 기미조) - 나 홀로 담담하구나, 그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음이여.

如嬰兒之未孩(여영아지미해) - 마치 아직 웃음 터지지 않은 갓난아이 같네.

儽儽兮, 若無所歸(루루혜, 약무소귀) - 지치고 또 지쳤네, 돌아갈 곳이 없는 것 같네.

衆人皆有餘,而我獨若遺(중인개유여, 이아독약유) - 뭇사람들은 모두 여유가 있는데, 나만 홀로 모자라는 것 같네.

我愚人之心也哉(아우인지심야재) - 내 마음은 왜 이렇게 어리석은가?

沌沌兮, 俗人昭昭, 我獨昏昏(돈돈혜, 속인소소, 아독혼혼)

- 혼돈스럽구나, 세상 사람들은 모두 밝은데 나만 홀로 어두운 것 같네.

俗人察察,我獨悶悶(속인찰찰, 아독민민) - 세상 사람들은 자세히 살피는데, 나만 홀로 흐리멍텅한 것 같네.

澹兮,其若海(담혜, 기약해) - 고요함이여, 그것이 바다와 같네.

飂兮, 若無止(료혜, 약무지) - 거센 바람이여, 그치지 않을 것 같구나.

衆人皆有以,而我獨頑似鄙(중인개유이, 이아독완사비) 

- 뭇사람들은 모두 쓸모가 있는데, 나 홀로 완고하고 비천하구나.

我獨異於人,而貴食母(아독이어인, 이귀식모)
- 나 홀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만물을 먹이는 어미를 귀하게 여기는 것뿐.


도덕경 81장 가운데 20장은 가장 개인적인 장이다. 노자는 여기서 갑자기 철학자의 목소리를 내려놓고 고독한 인간의 목소리로 말한다. 어느 날 문득 염세주의가 엄습했는지 외롭고 쓸쓸하고, 우울한 느낌이 20장 전체에 깔려 있다. 

노자라는 철인(哲人)의 우울은 그래서 인간적이며, 이로 인해 도덕경 전체가 오히려 더 강력한 설득력을 획득한다.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다양성을 확보한다
교육을 중시하고 학문을 숭상하던 유교 사회에서 ‘배움을 끊으라’는 말은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것이다. 여기서 배움이란 세상의 기준, 타인의 평가, 사회가 정해놓은 옳고 그름의 체계 전반을 일컫는다. 그것들은 쌓으면 쌓을수록 근심도 함께 쌓인다. 비교가 생기고, 결핍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노자는 지식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지식에 종속되는 것을 경계한다. 

스티브 잡스가 PC의 상식을 거부했을 때, 일론 머스크가 로켓 제조의 관행을 끊었을 때 — 그들이 한 일은 기존 학습의 틀을 의도적으로 버리는 것이었다. 이처럼 절학이란 무지(無知)가 아니라 무집착(無執着)이다.

‘예’와 ‘아니오’ ‘좋음’과 ‘싫음’은 우리의 머릿속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이분법을 적나라하게 설명하는 말이다. 노자는 묻는다. 그것들이 실제로 얼마나 다른 것인지.

어떤 리더가 직원을 해고한다. 이것은 나쁜 일인가, 좋은 일인가. 그 직원 입장에서는 나쁜 일이다. 회사 전체의 생존 입장에서는 필요한 일일 수 있다. 해고된 직원이 이것을 계기로 더 맞는 일을 찾았다면 결국 좋은 일이다. 선과 악의 경계는 처음부터 유동적이다.

훌륭한 리더는 ‘옳다’ ‘그르다’로 상황을 자르지 않는다. 제프 베조스가 말한 돌이킬 수 없는 결정과 돌이킬 수 있는 결정의 구분도 결국 경계의 유연함을 아는 사고다. 선과 악, 성공과 실패의 경계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아는 리더는 실패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실패가 실패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즐거운 사람은 없다
소셜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衆人熙熙(중인희희) — 뭇사람들은 희희낙락하는데’라는  구절은 더욱 날카롭게 살아난다. 인스타그램 등 SNS를 스크롤하면 모두가 희희낙락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곳을 여행하고, 아름다운 성취를 이루고, 화려하게 빛난다. 그 피드 안에서 조용히 앉아 생각하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아니, 없는 것처럼 보인다.

노자는 ‘아독박혜(我獨泊兮)’라고 한다. 나만 홀로 담담하다. 이 담담함은 무기력이 아니다. 세상의 소란에 휩쓸리지 않는 내면의 고요함이다. 갓난아이처럼 아무것도 규정되지 않은 상태. 이것이 노자가 추구하는 원점이다.

갓난아이는 어리석지 않다. 갓난아이는 아직 오염되지 않았다. 선입견도, 편견도, 기득권도, 강박도 없다. 노자의 눈에 가장 이상적으로 보이는 상태다. 성인이 되어 다시 갓난아이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도(道)에 가장 가까운 상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리더들이 희희낙락의 외형을 연출한다. 활기찬 인스타그램 피드, 자신감 넘치는 스피치, 화려한 비전 발표. 그러나 실제로 오래 살아남는 리더들은 대부분 노자의 ‘박혜(泊兮)’에 가깝다. 조용하고, 드러나지 않으며, 생각이 많다. 워런 버핏은 화려한 행사 없이 오마하의 사무실에 앉아 책을 읽는다. 제임스 다이슨은 5,126번의 실패를 혼돈 속에서 견뎠다. 시끄럽지 않아도 된다. 

세상이 말하는 영리한 사람이란 계산이 빠르고, 이익을 잘 챙기고, 사람을 잘 다루고, 자기 것을 잘 지키는 사람이다. 넉넉하고 여유 있어 보이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말 영리한 사람은 그 반대라고 말한다. 뭔가 비어 있는 것 같고, 버려진 것 같고, 어리석은 것 같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척, 완벽한 척하는 리더보다 ‘나도 모른다’, ‘나도 실수한다’고 말할 수 있는 리더가 더 깊은 신뢰를 얻는다. 어리석어 보이는 것을 감수하면서 진실에 가까이 서려는 태도. 그것이 군중의 박수보다 더 오래 가는 리더십의 토대다.


인공지능에 이길 수 있는 영역은 
‘인간미(人間美)’뿐
빠르게 분석하고, 선명하게 규정하며, 자신 있게 답하는 사람은 타인의 말 하나, 행동 하나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판단한다. 우리 시대가 원하는 인재상에 부합한다. 빠른 분석, 명확한 의사결정, 예리한 판단력.

그런데 노자의 선택은 그것과는 반대쪽에 서 있다. 섣불리 규정하지 않고, 판단을 유보한 상태. 일견 답답해 보이지만, 사실은 더 큰 가능성을 열어 놓은 상태다. 너무 빠른 판단은 오류를 낳고, 너무 선명한 분류는 예외를 차단하며, 지나치게 예리한 눈은 큰 그림을 놓친다.

인공지능은 빠르게 판단하고, 더 빠르게 분석하고, 아무리 복잡한 사실들도 명확하게 패턴화한다. 해당 분야에 관한 한 자칭 리더라는 인간들을 모두 추월하고 초월했다. 그렇다면 리더로서의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간 본연이 지닌 아름다움, 즉 인간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20장의 결론은 ‘어머니’다. 여기서 어머니는 도(道)이며, 자연의 근원이며, 모든 것을 낳는 원천이다. 노자는 세상의 유용함을 좇지 않고, 그 유용함이 나오는 원천으로 돌아가려 하고, 돌아가자 하고, 돌아가라고 한다. 세상의 쓸모를 좇기보다, 그 쓸모의 근원을 붙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식모’라는 말은 우리가 아는 그 식모가 맞다. 천지의 만물을 먹여 살리는 어머니. 이는 단순히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낭만적 표현이 아니라, 지엽적인 이익, 일시적인 성공, 남에게 보이는 쓸모보다 더 깊은 것으로 돌아가라는 권고이면서 경고다.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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