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합법 다단계도 위험 업종인가?
국가가 합법으로 인정한 사업모델이 금융시스템에서는 사실상 배제되고 있다면, 그 자체로 제도의 모순이다. 최근 일부 다단계판매업체들이 카드사와 PG사 심사 과정에서 납득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은 적지 않은 의문을 남긴다.
방문판매법에 따라 정식 등록하고 소비자피해보상보험 계약과 공제조합 가입 등 법적 의무를 모두 이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용카드 결제 서비스 도입 과정에서 단지 다단계판매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실상 ‘위험 업종’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들은 보상플랜이나 공제조합 안내를 삭제한 별도 홈페이지를 만들어 심사를 받아야 했고, 일부는 아예 계약이 거절돼 높은 수수료를 부담하면서 2차 PG사를 이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카드사가 오히려 편법과 꼼수를 획책하는 것으로밖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카드사와 PG사가 위험 관리를 중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소비자 민원, 차지백, 환불 분쟁, 폐업 위험 등은 결제산업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다. 과거 일부 불법 피라미드 조직과 사기성 판매조직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위험 관리와 업종 차별은 다른 문제다. 진정한 리스크 관리는 기업별 재무 상태와 민원 이력, 실제 환불률과 거래 안정성 등을 분석하는 것이다. 반면 ‘다단계’라는 업종 명칭만으로 일괄적인 제한을 가하는 것은 개별 기업의 실체를 살피지 않은 채 감정을 바탕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가장 어리석은 방식의 심사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현행 방문판매법상 등록 다단계판매업체는 일반 온라인 쇼핑몰보다 훨씬 강한 규제를 받고 있다. 등록 요건을 충족해야 하고, 소비자피해보상보험 계약을 유지해야 하며, 각종 정보공개 의무도 부담한다. 다시 말해 국가가 일정 수준의 검증과 감독을 수행하고 있는 사업자들이다. 그럼에도 금융시스템에서는 불법 조직과 유사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정부의 규제 체계와 금융권의 심사 체계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카드업계는 단순한 사기업 이상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신용카드 결제망은 현대 상거래를 떠받치는 핵심 인프라다. 과거 무분별한 카드 남발로 카드산업이 위기를 맞았을 때 국가가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지원에 나섰던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카드 업계 또한 공공 인프라를 담당하는 주체로서 객관적 기준과 합리적 절차에 따라 시장 참여자를 평가할 책임이 있다.
다만 업계 역시 감정적 호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차별받고 있다’는 주장만으로는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필요한 것은 데이터다. 등록 다단계판매업체의 실제 차지백 비율, 소비자 민원 발생률, 환불률, 폐업률 등을 일반 전자상거래 업체와 비교한 객관적 자료가 마련돼야 한다. 공제조합을 포함하는 업계가 공동으로 실태조사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이제 금융당국과 카드업계도 답해야 한다. 국가가 합법으로 인정한 사업모델을 어떤 근거로 위험 업종으로 분류하고 있는지, 현재의 심사 기준이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한 것인지 점검해야 한다. 합법업체와 불법 조직을 구분하는 명확한 가이드라인 마련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리스크 관리는 필요하지만 편견까지 관리의 범주라고 할 수는 없다. 금융시스템은 감정과 편견을 배제하고 객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움직여야 하며, 법이 인정한 기업이라면 최소한 공정한 심사를 받을 권리 또한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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