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활용 범위, 암 진단부터 응급 X-ray 판독까지
<글로벌 헬스&뷰티 시장 분석 70> - 스페인 의료시장

최근 스페인 병원에서는 AI 기술 도입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과거에는 일부 연구 중심 병원이나 대형 민간 병원을 중심으로 AI 기반 영상 판독 보조 기술이 활용됐으나, 점차 일반 공공병원, 응급실, 암 진단, 신경 영상 분석, 진료기록 자동화 등으로 적용 범위가 넓어지는 추세다. 특히 스페인은 한국과 달리 의료 행정 권한이 중앙정부뿐 아니라 각 자치주(Comunidad Autónoma)에 상당 부분 분산돼 있어, 지역별 보건당국이 자체적으로 AI 도입을 추진하는 양상이다.
AI 기술이 가장 활발히 적용되는 분야는 의료 영상 판독 보조이다. 스페인 병원들이 AI를 적극 도입하는 이유는 영상 검사 수요 증가, 전문의 업무 부담, 조기진단 필요성 등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AI는 X-ray, MRI, CT 등에서 의심 병변을 탐지하거나, 기존 영상과의 비교 분석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즉, 현재 스페인 병원에서 사용되는 AI는 의료진이 최종 판단을 내리기 전에 병변 탐지, 우선순위 분류, 정량 분석, 판독 보조 등을 수행하는 보조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마드리드 주정부(Comunidad de Madrid)는 2026년 5월 지역 내 공공병원에 AI 기반 암 진단 보조 솔루션을 도입하였음을 발표했다. 해당 기술은 전립선암과 유방암 등의 진단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전립선암의 경우 다중매개변수 자기공명영상(mpMRI, multiparametric MRI)을 분석해 종양의 변화와 의심 부위를 파악하고, 유방암의 경우 2D 유방촬영술과 3D 유방 단층촬영술에서 의심 병변을 찾아 악성 가능성을 점수화하는 방식이다. 마드리드 주는 이를 통해 암 진단의 속도와 정확도를 높이고, 공공병원 간 영상 진단 체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카탈루냐 지역의 주요 대형 병원인 바르셀로나 클리닉병원(Hospital Clínic Barcelona)도 AI 활용을 확대하고 있다. 해당 병원은 2025년 3월 신경 영상 분석 분야에 AI 기반 플랫폼을 적용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플랫폼은 알츠하이머병, 뇌전증, 다발성경화증 등 신경계 질환의 진단과 추적 관리에 활용되며, MRI와 PET 등 다양한 신경영상 데이터를 정량화해 의료진의 판독과 임상 의사결정을 보조한다. 이는 AI 활용이 단순한 응급 영상 판독을 넘어, 만성·퇴행성 질환의 장기 추적 관리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상 판독 분야에서 도입 활발
응급실과 1차 의료 현장의 영상 판독 분야에서도 AI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발렌시아주 보건당국은 2025년 2월 흉부 및 골 X-ray에서 병변을 탐지하는 AI 판독 보조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시스템은 알리칸테 소재 독토르 발미스 대학병원(Hospital General Universitario Dr. Balmis)에서 2024년 하반기부터 파일럿 프로젝트로 운영됐으며, 2025년 2월 기준 4만 명 이상의 환자와 7만 건 이상의 영상검사에 활용됐다.
발렌시아주 보건당국에 따르면 해당 AI는 흉부 및 골 X-ray 영상을 촬영 후 5분 이내에 자동 분류해, 골절, 탈구, 관절삼출, 골 병변, 기흉, 폐 결절 등 긴급 진료가 필요한 소견을 의료진이 빠르게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후 발렌시아주는 해당 시스템을 공공의료망 전반으로 확대 중이다. 2025년 7월 발렌시아 주정부는 단순 X-ray 영상에 AI를 적용하는 시스템을 흉부, 골, 유방 분야까지 확대해 1차 의료, 응급실, 유방암 조기진단 부서 등에 배포했다고 밝혔다.
민간 의료기관에서도 AI 도입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스페인의 주요 병원 그룹 중 하나인 키론살루드의 마드리드 대학병원(Hospital Universitario Quirónsalud Madrid)은 응급 X-ray, 맘모그래피, 심장 MRI, 폐·뇌 CT 등 다양한 영상 검사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특히 응급실에서는 골절과 흉부 병변을 빠르게 탐지하고, CT에서는 폐 결절이나 뇌출혈 의심 소견을 의료진에게 알려주는 방식으로 적용된다. 또한 해당 기업의 바르셀로나 병원(Hospital Quirónsalud Barcelona)은 생성형 AI 기반 진료기록 보조 시스템인 ‘Scribe’를 도입해 의사와 환자의 대화를 자동으로 전사하고, 핵심 내용을 전자의무기록에 반영하는 방식의 디지털 진료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의료진의 판단 보완하는 임상 보조 도구로 인식
스페인 의료계의 AI에 대한 입장은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AI가 의료진의 판단을 대체할 수 있는지, 오진이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환자의 민감한 의료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가 컸다. 그러나 최근 스페인 병원에서 AI 활용 사례가 실제 진료 현장으로 확산되면서, 의료계의 논의도 단순한 찬반 구도를 넘어 “어떤 조건에서 안전하게 활용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특히 스페인 의료계는 AI를 의사를 대체하는 기술로 보기보다는 의료진의 판단을 보완하는 임상 보조 도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영상의학, 응급의료, 병원 운영, 진료기록 자동화 등에서 AI가 의료진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진단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는 비교적 긍정적이다. 다만 최종 진단과 치료 결정, 환자에 대한 설명 책임은 여전히 의료진에게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분명하다. 즉, 스페인 의료계의 기본 입장은 “AI 도입은 필요하지만, 인간 의료진의 감독과 책임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조건부 수용에 가깝다.
이러한 변화는 스페인 의사 단체의 움직임에서도 확인된다. 스페인 의사협의회(CGCOM)는 최근 AI와 디지털 헬스가 의료 윤리, 전문직 책임, 의사-환자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주요 의제로 다루고 있다. CGCOM은 AI가 의료 현장에 가져올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의료진이 AI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해야 하는지, AI 활용 과정에서 환자에게 어느 정도까지 설명해야 하는지, 오진이나 오류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민간병원 경영진과 보건의료 관리자들도 AI 도입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스페인 보건관리자협회(SEDISA)는 AI가 병원 자원 배분, 대기시간 단축, 행정업무 자동화, 질병 발생 예측, 임상 의사결정 지원 등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의료진 개인의 진료 효율뿐 아니라 병원 전체의 운영 효율을 높이는 수단으로 AI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다만 보건관리자들 역시 AI를 병원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관리자와 의료진이 AI의 기본 원리, 데이터 활용 방식, 윤리적 쟁점, 법적 책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스페인 보건부는 2025년 11월 국가 보건 시스템 인공지능 전략(eIASNS)을 승인하며, 의료 AI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추진 방향을 제시했다. 우선 중앙정부와 자치주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고, 국가 보건 시스템(SNS, Sistema Nacional de Salud) 내 AI 솔루션의 식별, 분류, 평가 절차를 통일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AI 솔루션이 병원 현장에 도입되기 전에 기술적·임상적·윤리적 검증을 거치도록 하고, 데이터 품질, 의료진의 감독, 개인정보 보호, 환자 안전을 포함한 공통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의료진과 보건의료기관의 AI 활용 역량을 높이기 위한 교육과 지원도 추진한다. 스페인 정부는 이를 통해 자치주별로 분산돼 있는 AI 도입 사례를 국가 차원에서 조율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의료 AI만 공공 의료 시스템에 단계적으로 적용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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