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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독식의 문제점 알기

  • 기사 입력 : 2026-08-13 15:17:17
  • 수정 시간 : 2026-08-13 15: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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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인류 역사는 도구 선택의 역사

[잉여인간] - 저자: 문호성

자본 독식의 문제점 알기 

산업혁명의 그늘 
산업 자본주의 시대에서 발생한 가장 큰 문제는 노동력 착취입니다. 이에 대해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각 개인들에게 지급되는 자산 분배가 공평하게 이루어져야 진정한 부자 국가가 실현된다”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배분의 법칙에 있어서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거의 독식을 하게 됨으로 인해 그 배분의 정의가 깨졌고, 결국 자본가 5%가 재화의 90%를 독식하는 독식의 자본주의가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약 200년 전 독일의 철학자이며 사상가인 칼 마르크스라는 사람이 등장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자본론>을 씁니다. 그는 빈익빈 부익부라는 차별의 문제를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모순을 지적했습니다. 모든 부는 노동에서 만들어지는데 산업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자본가가 생산물의 소유를 독점하는 구조라 생산물로부터 나오는 잉여 이익을 독차지하게 되는 모순을 지적한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는 주인공이 되고 결국 이 산업 자본주의 무대에서는 노동자가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적한 겁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옥철을 타고 오늘도 사무실로, 고객, 상사, 동료, 거래처와 진을 빼면서 힘겹게 사투를 벌이다 점심시간과 퇴근만 기다리는 신세는 마치 거대한 조직 속 부품이 되어 같은 일만 반복하는 다람쥐가 된 것 같습니다. 일은 늘 열심히 했지만 내가 일한 것에 비하면 월급은 한참 부족한 것 같습니다. 

‘나만 그런 건가? 우리나라만 그런가? 아니면 요즘 불경기라서 그런가?’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감정들을 아주 오래전 유럽 산업혁명 이후 공장에 들어서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느껴 왔습니다. 대체 왜 그런 건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에 대해 고민한 학자가 칼 마르크스였습니다.


칼 마르크스의 노동 소외론은 현재에도 적용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노동을 가치 있고 신성하게 여기면서 태어났는데, 정작 현실의 노동자들은 늘 힘들고 불만 가득하다는 점이 마르크스는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 제대로 깊게 연구한 끝에 하나의 이론을 완성합니다. 그것이 바로 ‘노동 소외론’입니다. 

1차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2차, 3차 산업혁명을 거쳐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를 더 편리하게 만들었고, 사회 전체의 재화는 꾸준히 증대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왜 보통 사람인 나의 삶은 나아진 것이 없는 걸까요?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된다고 내 연봉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일자리가 점점 없어진다고 사방에서 경고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놀랍게도 200여 년 전 마르크스가 살던 때도 상황이 똑같았습니다. 

당시 서유럽의 상황은 산업혁명 직후 영국에서는 누군가는 엄청난 부자가 되는데 누군가는 굶어 죽어 갔습니다. 증기기관이라는 기술 발전 덕분에 공장에서 빠르게 상품을 찍어낼 수 있었지만,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죽어라 일하고도 쥐꼬리 같은 월급을 받았을 뿐, 상품을 팔아 남긴 이윤은 모두 공장 주인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나마 일자리마저도 언제든 잘릴 수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먹고살기 위해 화를 참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보고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를 더 화나게 만든 것은 정작 당사자인 노동자들은 뭐가 왜 잘못된 건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매일 바쁘게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당연시되는 룰 
예나 지금이나 노동자들은 일한 시간만큼만 월급을 받아가고, 자본가는 공장을 짓기 위해 투자를 했으니 물건을 만들고 팔아서 남는 잉여 이익을 독점적으로 가져가는 것이 당연시됩니다. 돈을 더 벌고 싶다면 열심히 야근하고 자본가에게 인정받아 고임금 노동자가 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이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경제 시스템이자, 서로 합의된 룰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러한 통념을 근본부터 바꾸려 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4가지 방식으로 소외된다고 정리했습니다. 여기서 ‘소외(Alienation)’란 어떠한 과정에서 통제력을 상실한 채 무력감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노동 과정에서 자신을 소외시키는 현상으로 설명합니다. 노동자가 자신의 작업에서 자신의 창의성, 자아실현을 표현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물질적 생산과 경제적 거래에 얽매여 기계적인 존재처럼 살아간다는 개념입니다.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에서 노동자들은 생산과정 전반에서 배제되어 있다고 보는 겁니다. 힘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마르크스는 차별, 불평등 같은 단어 대신 소외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1) 첫 번째 소외: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생산물로부터 소외된다’라는 의미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의 결과인 생산물에 대한 소유권이 없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노동자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열심히 생산물을 만들어도 그것은 자신이 아닌 자본가에게 소유권이 넘어갑니다. 심지어는 이 생산물이 나중에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알지 못합니다. 

자동차 공장을 다니는 철수는 매일 자신의 노하우를 살려 나사를 조립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이 자동차가 자기 것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이 자동차가 사람들에게 많이 팔려서 이윤이 남아도 자신에게 남는 건 전혀 없습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어제 그랬듯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작업을 반복할 뿐입니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더 열심히 일하면 할수록 생산물로부터 더 소외된다는 사실입니다.

노동자가 열심히 일하면 더 가치 있는 제품이 생산되지만, 월급은 그대로이기에 값비싼 신제품을 구매할 여력이 부족해집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본주의는 발전하는데 노동자는 점점 더 빈곤해지게 됩니다. 철수는 ‘공장 주가 다 가져가면 안 되지’라고 항의할 수 없는 시스템에 체념합니다.


2) 두 번째 소외: 노동 과정에서의 소외 
세상에 공장이 없었을 때는 물건은 장인이 한 땀 한 땀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었습니다. 솜씨 좋은 장인은 모든 제작 과정을 통제하였고, 그 결과로 나온 생산물은 곧 장인만의 고유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때는 장인이 없으면 생산 자체가 안 되기 때문에 장인의 말이 곧 법이고 그 솜씨를 인정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공장 생산 시스템에서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한 명의 노동자는 전체 생산과정 중 일부만을 전담했고, 공장 전체의 생산 속도에 맞춰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했습니다. 노동자는 점점 생산과정 내에서 덜 중요해지고 덜 자유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노동 과정에서의 소외입니다. 

찰리 채플린 주연의 영화 <모던 타임즈>는 공장 시스템 안에서 노동자가 겪는 소외와 사회적 모순을 유머러스하게 풍자했습니다. 기업경영, 공장 생산이 익숙한 현대인에게는 조직의 분업 과정에서 노동자가 부품이 되는 과정이 그다지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노동자들을 빈곤하게 만든 핵심이라는 점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탈숙련화’ 때문입니다. 한 장인이 자동차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든다면 그는 대체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컨베이어 벨트에서 부품을 조이기만 하는 일꾼은 쉽게 대체되고 바꿀 수 있습니다. 

장인은 여러 기술을 알고 있지만 나사 조이기 작업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사를 조이는 노동자는 자신이 전체 공정에서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맡은 일만 반복할 뿐이죠. 

이는 현대의 노동직, 사무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산이 효율화되면 제품을 빠르게 많이 생산할 수 있어 자본가는 좋겠지만 각 공정을 맡은 노동자의 가치는 점차 떨어지기 때문에 돈도 권력도 잃어갑니다. 노동자의 빈곤이 본격화되는 것입니다. 나사 조립이 보람도 비전도 없는 작업이라는 걸 알게 된 노동자들은 일하는 재미를 잃게 됩니다. 그렇지만 생계를 유지하려면 적은 월급이라도 열심히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다음날 출근합니다.


3) 세 번째 소외: 사회적 관계에서의 소외 
동료 노동자로부터의 소외도 나타납니다.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우리 인류의 도구 선택의 역사는 몇 안 되는 일자리를 놓고 협력보다는 경쟁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를 소외시키는 구조에서 살고 있습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적은 월급으로 일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인정받고 일자리를 얻습니다. 

취직만 한다고 이 경쟁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승진하기 위해 끊임없이 옆 동료와 경쟁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어릴 적부터 공부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많은 스펙을 쌓고 대기업에 취직하여 정장을 입고 열심히 회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본 게임은 취직 이후입니다. 실적, 고과평가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살아남기 위해 노력합니다. 직장 동료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기도 하지만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구조에 익숙해졌습니다. 동료 즉 사회관계에서의 소외를 겪다 보면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고 고독해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4) 네 번째 소외: 인간 본성으로부터의 소외 
인간 본성의 상실에서 오는 자아 상실에 대한 실망감도 옵니다. 마르크스는 인간은 동물과 달리 본래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유적(類的) 존재라고 정의했습니다. 즉 인간은 본질적으로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노동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는 존재로서 노동에 가치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힘든 현실을 견디는 노동자가 자아실현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그저 생존을 위해 일하면서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다움을 점점 잃어갑니다. 뭐가 될지도 모를, 내 것도 아닌 물건을 막 만들고 내가 무슨 작업을 왜 하는지도 모르면서 반복하고 옆에 있는 동료를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면서 인간관계는 왜곡되고 공감 능력이 결여됩니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렇게 소외를 겪은 노동자들이 이를 보상받고자 쾌락적이고 파괴적인 활동에 이끌리게 된다고 말합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자본가들은 이런 심리를 이용하여 여가 산업, 미디어산업, 스포츠산업으로 끌어들이면서 또다시 노동자의 돈을 뜯어 간다고 본 겁니다. 그러나 자본가도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노동자를 착취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본가라는 역할이 존재하는 사회 체계, 즉 자본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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