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 대신 근거로 바뀌는 제약·바이오 공시
<알아두면 쓸모있는 식약정보>

신약 하나가 기업의 운명을 바꾸는 제약·바이오산업은 언제나 기대와 불확실성이 공존한다. 임상시험 성공 여부, 기술이전 계약, 품목허가 등 수많은 변수가 기업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 투자자가 이러한 정보를 충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꿈의 신약’, ‘조 단위 기술수출’, ‘FDA 승인 임박’과 같은 자극적인 표현은 쉽게 눈길을 끌지만, 정작 투자 판단에 필요한 핵심 정보는 여러 공시에 흩어져 있거나 전문용어에 가려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제약·바이오 공시 종합 개선방안’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기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투자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를 중심으로 공시 체계를 바꾸겠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이제부터 ‘꿈’이나 ‘기대’보다 객관적인 수치와 근거를 중심으로 기업의 가치를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개선안은 단순히 공시 양식을 손질하는 수준이 아니다. 기업이 연구개발 전 과정에서 제공하는 정보의 정확성과 비교 가능성을 높이고, 투자자가 기업의 성장 가능성과 위험요인을 함께 판단할 수 있도록 공시 전반을 재설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조 단위 계약’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받을 수 있는 돈
이번 개선안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IPO(기업공개) 단계의 공모가 산정 방식이다. 그동안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미래 성장 가능성을 중심으로 기업가치를 제시해 왔지만, 기업마다 설명 방식이 달라 투자자가 서로 비교하기 어려웠다. 예상 시장 규모를 지나치게 크게 제시하거나 성공 가능성을 낙관적으로 반영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공모가 산정의 핵심 가정을 네 가지 항목으로 표준화했다. 예상 시장 규모, 임상시험 성공 확률, 허가 및 심사 리스크, 개발기간과 소요 비용이다. 앞으로 기업은 이 네 가지 요소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장 규모는 단순히 ‘글로벌 시장 50조 원’이라고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회사가 진출 가능한 목표시장과 그 산정 근거를 함께 설명해야 한다. 또한 임상시험 성공 확률은 기업 자체의 기대치가 아니라 논문과 통계자료 등 객관적인 자료를 기반으로 산정하도록 했다. 허가 과정에서 예상되는 규제 리스크와 개발 일정, 필요한 자금 규모까지 단계별로 공개하도록 함으로써 투자자가 연구개발 전 과정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기술이전 계약 공시 역시 대폭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총 계약 규모 2조 원’처럼 최대 계약금액만 강조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실제로는 계약 체결 즉시 받는 계약금과 임상 성공이나 품목허가 이후 받을 수 있는 마일스톤은 성격이 다르다. 앞으로는 계약금, 개발 마일스톤, 허가·판매 마일스톤, 로열티를 각각 구분해 공개하도록 했다. 투자자는 계약 규모뿐 아니라 현재 확보한 수익과 미래 가능성을 명확히 구분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상장 이후 공시도 한층 체계화된다. 현재 개발 중인 파이프라인뿐 아니라 과거 공개했던 모든 파이프라인의 개발 중단, 기술이전, 품목허가, 판매 여부까지 하나의 이력관리 체계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개선된다. 개발 일정이 최초 계획보다 늦어진 경우에는 그 이유와 향후 계획도 함께 공개해야 한다. 투자자는 특정 시점의 성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연구개발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되고 있는지 전체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신약’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공시
이번 개선안은 언론보도에도 상당한 변화를 예고한다. 금융감독원은 별도의 ‘제약·바이오 언론보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공시보다 먼저 보도하거나 공시와 다른 내용을 전달하는 관행을 개선하기로 했다. 앞으로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공시를 통해 먼저 공개해야 하며, 언론보도는 공시 내용과 일치해야 한다. 공시에 없는 중요 정보를 추가하거나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지양하도록 권고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금융감독원이 함께 제시한 ‘제약·바이오 업종 가짜뉴스 단골 표현’이다. 투자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사례를 유형별로 정리하고, 어떤 부분을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설명도 함께 담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꿈의 항암제’, ‘기적의 치료제’와 같은 찬사형 표현이다. 혁신적인 기술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실제 치료 효과가 검증된 것이 아니며, 초기 연구 단계일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임상시험의 1차 평가지표 달성 여부와 통계적 유의성(P-value) 등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FDA 승인 임박’, ‘사실상 성공’과 같은 표현도 마찬가지다. 품목허가는 규제기관의 심사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일부 유리한 데이터만으로 성공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허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규제 리스크와 현재 임상 단계까지 함께 살펴봐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다.
‘50조 원 시장 정조준’, ‘2조 원 기술수출’처럼 기대 수익을 부풀리는 표현도 대표적인 사례다. 기사에서 강조하는 시장 규모는 전체 시장일 뿐 실제 기업이 확보할 수 있는 매출이 아니며, 기술이전 계약 규모 역시 임상시험과 상업화가 모두 성공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일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는 실제 목표시장과 계약금, 조건부 마일스톤을 구분해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것이 금융감독원의 설명이다.
이 밖에도 희귀의약품 지정이나 패스트트랙 지정이 곧 품목허가를 의미하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드는 표현, 노벨상 수상자 영입이나 유명 학술지 게재만으로 기술력을 과장하는 사례, AI·비만치료제 등 시장의 유행 키워드에 편승하는 홍보 방식도 대표적인 주의 사례로 제시됐다. 결국 투자자는 화려한 표현보다 객관적인 근거와 실제 개발 현황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정확한 정보가 산업의 신뢰 구축
이번 제도 개선은 제약·바이오기업만을 위한 변화가 아니다. 소비자의 신뢰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건강기능식품산업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건강기능식품 역시 기능성 원료, 인체적용시험, 특허, 해외 진출, 시장 규모 등 다양한 정보를 활용해 제품과 기업을 홍보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성과만을 부각하거나 미래 가능성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면 소비자의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은 제약·바이오산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금융감독원은 이번 종합 개선방안을 통해 투자자가 기업 간 정보를 보다 쉽게 비교하고 성장 가능성과 위험요인을 균형 있게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공시와 언론보도의 정합성을 높여 과장되거나 단편적인 정보로 인한 투자자 오인을 줄이고, 제약·바이오 기업에 대한 신뢰와 자본시장의 투명성을 높여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장 참여자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현장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반영해 제도를 보완해 나갈 방침이다.
이번 개선안이 정착된다면 기업은 보다 책임 있는 정보 공개 문화를 갖추게 되고, 투자자와 소비자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보의 양보다 정보의 신뢰도가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 제약·바이오산업 역시 ‘얼마나 크게 말하느냐’보다 ‘얼마나 정확하게 설명하느냐’가 경쟁력이 되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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