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을 키우고, 물러나서 겸손하라
<진리에 대하여…>
『도덕경』 제24장 (第二十四章)
企者不立(기자불립)
발뒤꿈치를 들고 선 자는 오래 서 있지 못하고,
跨者不行(과자불행)
가랑이를 벌리고 걷는 자는 오래 걸을 수 없다.
自見者不明(자현자불명)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자는 밝지 않고
自是者不彰(자시자불창)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빛나지 않는다.
自伐者無功(자벌자무공)
스스로 잘난 체하는 자는 공을 인정받지 못하고,
自矜者不長(자긍자불장)
스스로 뽐내는 자는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
其在道也(기재도야)
이런 것들은 도의 관점에서 보면,
曰餘食贅行(왈여식췌행)
찌꺼기 음식이나 군더더기 같은 행동이다.
物或惡之(물혹오지)
사람들은 누구나 이를 싫어한다.
故有道者不處(고유도자불처)
그러므로 도를 따르는 사람은 거기에 처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남보다 앞서고 싶어 한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자신이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욕망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발전하려는 의욕과 성취욕은 삶을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력을 쌓는 일보다 실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데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하면 성장은 멈춘다. 노자가 경계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기자불립(企者不立)의 ‘기(企)’는 발뒤꿈치를 들고 서는 모습이다. 발돋움하면 잠시 키가 커 보이고 남보다 멀리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자세로는 오래 서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실력보다 높은 자리에 서려 하거나 아직 준비되지 않은 성과를 서둘러 얻으려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잠시 주목받을 수는 있어도 그 위치를 오래 지키기는 어렵다.
능력 과신으로 몰락한 항우
『사기』와 초한쟁패의 역사에서 항우는 이러한 모습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항우는 타고난 무용과 군사적 재능을 갖춘 인물이었다. 거록 전투에서 진나라 주력군을 격파하며 천하에 이름을 떨쳤고, 그의 위세 앞에서 제후들은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당시의 능력만 놓고 보면 유방은 항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항우는 자신의 힘을 지나치게 믿었다. 자신이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는 사실을 전쟁을 통해 끊임없이 증명하려 했고, 사람을 얻고 쓰는 일보다 자신의 위엄을 드러내는 데 익숙했다. 책사 범증의 충고를 끝까지 신뢰하지 못했고, 홍문연에서 유방을 제거할 기회도 놓쳤다. 천하를 얻기 위해서는 때로 몸을 낮추고 기다려야 했지만 항우는 그것을 비겁함으로 여겼다.
반면 유방은 무예도 부족했고 전략에서도 항우보다 뛰어나다고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장량의 계책을 듣고, 소하에게 나라의 살림을 맡기고, 한신에게 군대를 지휘하게 했다. 유방은 훗날 자신이 천하를 얻은 까닭을 설명하면서 자신은 장량·소하·한신만 못하지만 그들을 쓸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항우는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고, 유방은 자신보다 강한 사람을 자기 곁에 두었다. 항우는 발돋움하여 누구보다 높이 솟았지만 오래 서지 못했고, 유방은 낮은 자세로 한 걸음씩 걸어 마침내 천하를 얻었다.
자기 계발은 평범한 하루를 반복하는 일
과자불행(跨者不行)은 다리를 벌리고 으스대면서 큰 보폭으로 걷는 사람은 멀리 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목표를 크게 세우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목표에 도달하려는 마음이 너무 급하면 자신의 호흡과 형편을 무시하게 된다는 뜻이다. 책을 읽지 않던 사람이 하루에 한 권씩 읽겠다고 하고, 운동하지 않던 사람이 매일 두 시간씩 운동하겠다고 하면 처음 며칠은 의욕적으로 해낼 수 있다. 그러나 감당할 수 없는 속도는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자기 계발은 특별한 하루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를 반복하는 일이다. 하루에 열 장씩 읽고 한 달 만에 포기하는 것보다 하루에 한 장씩 읽으며 여러 해를 이어가는 사람이 결국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중요한 것은 오늘 얼마나 많이 했느냐가 아니라 내일도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느냐이다.
이어지는 자현자불명(自見者不明)과 자시자불창(自是者不彰)은 자기 확신이 지나칠 때 생기는 위험을 말한다. 자기 관점만 내세우는 사람은 오히려 사물을 밝게 보지 못하고, 자신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옳음은 세상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갖는 것과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믿는 것은 전혀 다르다.
지식이 실력은 아니다
『사기』에 등장하는 조괄은 지식과 실력을 혼동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병법을 익혀 군사 이론을 논하는 데 뛰어났다. 아버지 조사와 병법을 논해도 말로는 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조사는 아들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생명이 걸린 일인데 조괄은 병법을 너무 쉽게 말한다는 이유였다. 조사는 아내에게 조괄을 장수로 기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까지 남겼다.
훗날 조나라는 장평에서 진나라와 대치하던 염파를 교체하고 조괄을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조괄은 부임하자마자 염파가 세운 방어 전략을 바꾸고 적극적인 공격에 나섰다. 그러나 진나라는 몰래 명장 백기를 투입했고, 조괄의 군대를 유인해 퇴로와 보급로를 끊었다. 조괄은 포위망을 뚫으려다 전사했고 조나라 군대는 궤멸했다.
조괄에게 지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자신의 지식을 실제 능력보다 크게 평가했다는 데 있었다. 병법을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쟁을 지휘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보다 경험이 많은 염파의 전략에서도 배우려 하지 않았다. 자견과 자시는 결국 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게 실력
『삼국지』의 마속에게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속은 병법에 밝고 재능이 있어 제갈량의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유비는 임종을 앞두고 마속은 실제보다 말이 앞서는 인물이므로 중대한 일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제갈량은 북벌 과정에서 중요한 요충지인 가정을 마속에게 맡겼지만, 마속은 길목을 지키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고 산 위에 진을 쳤다. 높은 곳에서 적을 공격하면 유리하다는 자신의 병법 지식을 믿은 것이다.
왕평이 산 아래 길목에 진을 쳐야 한다고 거듭 간언했지만 마속은 듣지 않았다. 결국 위나라 군대는 산을 포위하고 물길을 끊었다. 촉군은 크게 패했고 제갈량의 북벌도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마속의 실패는 지식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명령대로 길목을 지키면 임무는 완수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보여주기는 어려웠다. 그는 기본적인 임무보다 자신만의 뛰어난 전략을 보여주는 길을 선택했다. 진정한 실력은 자신이 아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지 않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판단하는 데 있다.
지난 성취는 새로운 출발 위한 토대일 뿐
자벌자무공(自伐者無功)과 자긍자불장(自矜者不長)은 공을 세운 뒤의 태도를 말한다. 성과를 객관적으로 알리는 것과 자신의 공을 끊임없이 떠벌리는 것은 다르다. 성과를 지나치게 자랑하면 주변 사람들의 기여를 지우게 되고 더 배울 것이 없다는 착각에 빠진다. 과거의 성공이 다음 성공을 가로막는 것이다.
노자는 이러한 행동을 남은 음식과 몸에 붙은 군더더기에 비유한다. 음식은 몸을 살리지만 이미 배가 부른 뒤의 음식은 부담이 된다. 성취도 마찬가지다. 노력의 결과로 얻은 공은 소중하지만 그 공을 계속 붙들고 자신을 높이는 재료로 삼으면 삶의 군더더기가 된다. 지난 성취는 오늘의 자신을 증명하는 훈장이 아니라 내일 다시 출발하기 위한 경험이어야 한다.
제24장이 말하는 겸손은 자신을 무조건 낮추거나 능력을 숨기는 태도가 아니다. 자신의 크기를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능력이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은 아직 할 수 없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단단한 사람이다.
항우와 조괄과 마속에게는 모두 재능이 있었다. 그들이 실패한 까닭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바라보는 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유방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능력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결국 사람의 앞길을 결정하는 것은 현재 가진 능력의 크기만이 아니다. 자신을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타인의 말을 얼마나 들을 수 있으며, 얼마나 꾸준한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노자는 우리에게 남보다 낮아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높아 보이기 위해 발돋움하지 말라고 말한다. 빨리 가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멀리 갈 수 없는 무리한 보폭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자신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과장하는 마음을 버리라고 한다.
※ 저작권자 ⓒ 한국마케팅신문.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TOP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