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는 비대면, 약은 대면? 의약품 배송 논쟁
<알아두면 쓸모있는 식약정보>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앞두고 의약품 배송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진료와 처방은 비대면으로 허용하면서 의약품은 약국에서 직접 받아야 한다면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반면 약사사회는 의약품 배송이 의약품 오남용과 부적절한 처방을 확대하고, 복약지도와 의약품 관리의 안전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비대면진료는 제도화, 약 배송은 여전히 논쟁 중
비대면진료는 그동안 시범사업 형태로 운영돼 왔지만, 의료법 개정을 통해 제도화의 기반이 마련됐다. 그러나 비대면으로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발급받는 것과 처방받은 의약품을 집에서 배송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현행 제도에서는 비대면진료 처방 의약품의 재택수령이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섬·벽지 거주자, 장기요양급여 수급자, 등록장애인, 일정한 감염병 환자, 희귀질환자 등 법령에서 정한 대상이 주요 범위다.
정부가 향후 논의하고 있는 것은 이처럼 제한된 재택수령 대상을 보다 넓히는 방안이다. 모든 비대면진료 이용자가 처방약을 배송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현재와 같이 특정 환자군에 한정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다.
대한약사회는 법 시행도 전에 배송 범위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사회적 합의 파기라며 반대하고 있다. 비대면진료 제도화 과정에서 의약품 오남용과 국민 안전을 고려해 재택수령 대상을 제한한 만큼, 법이 본격 시행되기도 전에 이를 확대하는 것은 입법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환자·소비자단체 측에서는 현재의 제한이 오히려 환자의 실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거동이 불편하지만 법률상 특정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환자, 감염병으로 외출이 부담스러운 환자, 육아나 돌봄으로 약국 방문이 어려운 소비자 등도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약 배송이 꼭 필요한 이유는
의약품 배송 확대 논쟁에서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부분 가운데 하나가 실제로 약국 방문이 얼마나 불편한가에 대한 해석이다.
대한약사회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근거로 비대면진료 환자의 약국 조제율이 상당히 높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건강보험 환자의 비대면진료 후 약국 조제율은 2023년 6월 95.6%, 2025년 12월 92.1%로 나타났다. 대면진료 후 조제율이 통상 97~98%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비대면진료라고 해서 약을 제대로 조제받지 못하는 비율이 특별히 높은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약사회는 일부 비대면진료 플랫폼 업계가 자체 설문 등을 근거로 “환자 4명 중 1명이 약을 받지 못한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공식 통계와 배치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조사 표본이나 설계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통계로 국민 불안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환자·소비자단체는 조제율과 접근성을 동일한 개념으로 볼 수 없다고 반박한다. 처방을 받은 환자의 대부분이 결국 약을 조제받았다는 사실이 곧바로 약국 방문에 불편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고령자나 장애인, 만성질환자뿐 아니라 수술 후 회복 중인 환자, 어린 자녀를 둔 보호자, 직장인과 교대근무자 등에게 약국 방문에 소요되는 시간과 이동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조제 성공률만이 아니다. 비대면진료가 실제 환자의 의료접근성을 얼마나 개선하는지, 약국 방문이라는 마지막 단계가 비대면진료의 편익을 얼마나 제한하는지까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큰 쟁점은 ‘편의성’보다 의약품 안전
약 배송 확대에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의약품이 일반적인 생활용품과 다르다는 데 있다.
의약품은 환자의 상태와 처방 목적에 따라 복용량과 복용방법이 달라지며, 다른 약물과의 상호작용이나 중복 복용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 특히 온도와 습도 등에 민감한 의약품은 적절한 보관·운송 환경이 확보되지 않으면 품질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대한약사회는 그동안 비대면진료 플랫폼을 통해 탈모치료제, 비만치료제, 여드름치료제 등 비급여 의약품의 반복·과다 처방이 이뤄질 가능성을 꾸준히 문제 삼아 왔다. 플랫폼이 환자의 편의를 높이는 과정에서 의료기관이나 특정 의약품 선택을 유도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경우 의약품 오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배송 과정에서의 오배송과 분실, 변질 가능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환자가 약을 정확하게 전달받았는지, 배송 과정에서 적정 온도가 유지됐는지, 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등 기존 약국 중심의 전달체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낮았던 새로운 관리 문제가 발생한다.
반면 환자·소비자단체는 이러한 문제가 존재한다고 해서 배송 자체를 막을 것이 아니라 안전관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남용이 우려되는 의약품은 처방 단계에서 제한하고, 배송 과정에서는 운송업체의 등록과 관리, 온도관리, 본인수령 확인, 전 과정 추적관리 등의 기준을 마련하면 된다는 논리다.
플랫폼 규제와 약사의 역할도 함께 논의해야
의약품 배송 확대가 현실화될 경우 플랫폼의 역할과 책임 역시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플랫폼이 의료기관과 약국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특정 의료기관이나 약국을 우대하거나 특정 의약품의 처방을 유도하는 행위가 발생한다면 의료서비스의 공공성과 의약품 유통질서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배송 확대 여부와 별개로 플랫폼의 불공정한 알선·유인 행위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약사의 역할 역시 마찬가지다. 배송이 허용된다고 해서 약사의 전문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면 복약지도가 어려워지는 만큼 전화나 화상 등을 활용한 복약지도와 사후상담, 복용 이력 확인, 이상반응 모니터링 등 약사의 역할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배송업체에 대한 관리체계도 필요하다. 단순히 약국에서 의약품을 받아 환자에게 전달하는 수준이 아니라 의약품의 특성에 따른 운송 기준, 배송 과정의 추적관리, 오배송·분실 방지, 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 등을 명확히 해야 한다.
결국 비대면진료와 의약품 배송의 제도화는 ‘편의성’ 대 ‘안전성’이라는 단순한 대립구도로 접근해서는 해결하기 어렵다. 환자의 의료접근권을 확대하면서도 의약품 오남용과 부적정 처방을 막고, 약사의 전문적 역할을 유지하며, 플랫폼과 배송업체의 책임까지 명확하게 규정하는 다층적인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비대면진료가 본격적인 의료서비스의 한 축으로 자리 잡는다면 의약품 배송 역시 언젠가는 피하기 어려운 논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기준이다. 정부와 국회가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조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편의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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