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다단계 피해회복 법제도 연구학회’ 전문가 집단 맞나?
‘다단계 피해회복 법제도 연구학회’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단 학회가 지난 8월 30일 출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회라는 것은 학문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더욱 발전하게 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뜻한다. 그러니까 이들이 목표로 하는 것은 다단계판매 활동을 하다 뜻하지 않은 피해를 본 사람들을 구제하거나, 그에 준하는 피해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법을 만드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설명만으로는 이들의 의도가 무엇인지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 바닥에서 뭔가를 도모해 보겠다는 취지인 것 같다. 그런데 ‘다단계 피해회복’이라는 말에서부터 의문이 생긴다.
현직 판사와 변호사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단계판매업계에서 발생한 피해를 보상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것이다.
다단계판매업계에는 이미 20년도 더 전에 직접판매공제조합과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이 설립돼 피해보상 업무를 보고 있다. 피해보상이라는 말을 쓰고 있기는 해도 최근 들어서는 피해보상 사례가 거의 없을 만큼 피해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처럼 판사 변호사가 망라된 학회의 다단계판매업에 대한 인식 수준이 이토록 저급하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학회의 설립 취지문을 살펴보면 ‘조직적 금융범죄’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다.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휴스템코리아나 아도인터내셔널과 같은 금융범죄를 예방하고, 그에 대한 피해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렇다면 당연히 환영하고 지지할 만한 일이지만 ‘조직적 금융범죄’라고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굳이 ‘다단계’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면 업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법률이라는 것은 말 한마디, 글자 한 자에 의해서도 죄의 유무가 결정되며, 신체의 자유가 구속되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의 중차대함을 충분히 알고 있을 전문가 집단에서 다단계라는 용어를 함부로 가져다 씀으로 인해 조직적 금융범죄에서 발생하는 피해가 마치 다단계판매업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오인하게 하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다단계 피해회복 법제도 연구학회’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학회의 연구 대상이 어느 집단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정말 문자 그대로 다단계 피해회복이 목적이라면 이미 다단계판매에서 발생하는 피해는 100% 이상 보상되고 있으므로 학회의 연구 대상이 되기에는 중요성이 크게 떨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자칫 현행 공제조합의 역할이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어 업계의 갈등 요소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 관계자의 이야기처럼 ‘특정 법무법인 차원의 단발성 비즈니스’에 불과하다고 해도 이 학회에 참여한 판사 변호사들의 전문성과 정체성에는 심대한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생각이 말이 되기는 쉬워도, 말이 글이 되고 난 이후에는 책임과 의무가 뒤따르게 마련이므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모든 계약은 글로 이루어지고 대한민국의 법률 또한 성문법(成文法)을 따르고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문자의 중요성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다단계 피해회복 법제도 연구학회’가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학회의 명칭부터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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