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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후> 도덕은 어떻게 붕괴되는가? (2023-01-20)

독일계 미국인 정치평론가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악의 평범성이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전혀 양심에 거리낌 없이 행하는 일들이 악으로 판정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아이히만은 나치 독일의 친위대 장교였으며 폴란드, 독일, 러시아 등 국적을 묻지 않고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살이 자행됐던 홀로코스트의 책임자였다.

그의 행각은 윌리엄 스타이런의 소설
소피의 선택과도 겹친다. 소설에서 독일군 장교는 유태인 수용소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하고 집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와 단란한 시간을 보낸다. 아이히만일 수도 있는 그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살인이라고 인식하기보다는 그저 업무의 연장이며 나치 독일을 위한 충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군부 독재 시절의 대한민국 정보기관이나 경찰
, 검찰 등등에 일했던 사람들도 자신들이 저지르는 일들이 얼마나 거대한 죄악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단지 주어진 일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아이와 같은 또래의 학생을 고문하고 구타하고 심지어는 목숨을 앗는 일까지 태연하게 자행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서는 금이야 옥이야 하며 자신의 새끼를 돌봤을 것이다.

과거 대학생 다단계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던 당시 그들 조직의 수장들을 만나 이야기하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 아이들을 감금하고 합숙시키면서 불법 대출을 알선하던 그 사람이 유학 간 아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한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사람을 죽이고도 그것이 악인지 선인지 구별하지 못했던 나치 독일군들처럼 그들은 아이들을 감금하고 폭행하고 신용불량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면서도 그 아이들이 제 자식의 친구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형법이라는 것은 대개 도덕이 멈춘 지점에 세워지는 망루 같은 것이다
. 도덕을 통해 인간의 행동이 제어되지 않을 때 망루를 세우고 감시와 단속의 총구를 겨눈다. 그러므로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법치 사회란 곧 도덕의 잔해물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은 수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가치가 훼손되기보다는 오히려 각종 사건 사고에 인용되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악이란 평범할 뿐만 아니라 일반적이라는 사실을 매일 같이 확인해주고 있다
.

습관적으로 남을 속여 이득을 꾀하는 사람을 가리켜 사기꾼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습관적이라는 말이다. 어쩌다 속이는 사람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속인다는 것은 악의 평범성과 악의 일반화를 넘어 이미 악이라는 것이 일상화되고 입과 몸에 배었다는 말이다.

유사수신행위는
불려주겠다며 돈을 받는 행위를 말한다. 매일 같이 불려주든, 매주 불려주든, 매달 불려주든 상관이 없다. 언제까지라는 약속이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돈을 받는 것이 유사수신이라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사기이다. ‘사기 및 유사수신이 언제나 함께 붙어 다니는 것도 바로 지켜지지 않을 약속이라는 것을 예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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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당 GDP3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사람들의 삶과 영혼이 함께 피폐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20231월 현재 우리 사회를 가장 잘 포착하여 표현하는 말이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더불어 살기보다는 각자가 알아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한때 대한민국 사회는 공동 운명체라는 구호가 학교마다 관공서마다 내걸릴 만큼 공동체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랬던 우리가 점점 부자가 되면서 공동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지극히 개인적인 인간의 집단이 되고 말았다.

코로나
19를 겪는 동안 우리는 어느 때보다 생존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경험해야 했다. 멀쩡했던 사람이 감염된 지 수 일 만에 사망에 이르는 일들을 반복해서 겪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곧 시장으로 옮겨져 유사수신이라는 덫에 걸린 사람들
, 특히 친인척과 이웃사촌들을 그 참담한 덫으로 몰아넣고도 자신이 벌었으니 됐다며 희희낙락하는 지극히 평범하며 일반적인 악마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정말 놀라우면서 또 섬뜩한 것은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처럼 피해자들 역시 가해자의 횡재를 탓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아무리 엉성한 회사라도 3개월은 가겠지, 6개월은 가겠지라는 생각은 이미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의 피해를 예단하고 있다는 말이다. 반만년 동안 지고의 가치로 여겨왔던 도덕은 찬란한 문명이 꽃을 피운다는 21세기에 이렇게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권영오 기자mknews@m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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