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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누구를 위한 방판법인가?

  • (2024-04-26 08:02)

공정거래위원회가 다단계판매를 통해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의 상한가를 160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올리는 방안 등을 입법예고했다. 언뜻 봐서는 아주 큰 일을 한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여전히 현실감각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의 상한가를 12년 만에 40만 원 올려주는 것으로 아주 큰 결단을 한 것처럼 보도자료를 배포했지만 업계에서는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제품 상한가와는 상관없이 묶음 판매가 성행하고 있어서 이미 적게는 1인당 300~400만 원에서 많게는 몇 천만 원까지 매출을 치도록 권유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미 개별재화의 상한가는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또 단기적 프로모션이나 일시적인 후원수당 지급 기준 변경의 경우 통지 의무를 면제하는 내용도 반길만한 사건임에는 분명하지만, 큰 틀에서 본다면 규제 자체를 해소해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경제 활동의 자유를 천명한 헌법의 취지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번 보도자료에서도 ‘판매원 피해 예방을 위해서’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관련 공무원들은 판매원 또는 소비자의 피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입버릇이거나 잘 정리된 보도자료 양식에 들어가는 문장으로써 ‘피해 예방’을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현행 방문판매법으로 인한 가장 명백한 판매원의 피해는 후원수당을 35%로 제한하는 규정에서 비롯된다. 일한 만큼, 노력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을 봉쇄하는 것보다 더 큰 판매원 피해는 없다. 이것을 뒤집어보면 판매원의 몫은 35%에 묶어 놓고 기업에는 65% 이익을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조항이다. 최저 임금법이 시행되는 나라에서 과연 이러한 조항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무슨 일이든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점진적으로 개선하고 보완해 나가는 것이 각각의 경제 주체로 하여금 충격을 덜 받게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경제 현실은 폭풍처럼 불어닥쳤던 블록체인을 지나 AI 열풍이 몰아치고 있으며, 다양한 융복합 산업이 출현하면서 특정 행위만 제어하는 방식으로는 규제 자체가 의미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언제, 어느 때, 어떠한 방식으로 변혁이 촉발될지 알 수 없는 현실을 도외시 한 채 여전히 20세기에 제정된 방문판매법을 수정·보완하고 있어서야 경제 현실을 온전히 반영할 수 있겠는가.

규제의 목적은 질서 유지와 재발 방지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가장 강력한 재발 방지 수단은 규제와 질서를 어겼을 때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다단계판매와 관련된 규제 상황은 법규를 준수하는 기업의 실수만 적발해 터무니없이 엄한 처벌을 가하는 시스템으로 유지된다. 

업계의 종사자들은 합법 업체 120여 개에 대해서만 규제할 뿐 불법 업체 1만 2,000여 개에 대해서는 손 놓고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를 포함한 정부 당국을 비난한다. 규제가 규제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위반하는 사례에 대한 참혹할 정도의 처벌이 병행돼야 한다. 국내법을 존중하려는 선량한 의지에 오히려 손찌검으로 답하는 작금의 방식으로는 오히려 불법 조직의 발호를 조장할 뿐이다. 방문판매법을 포함한 각종 규제가 700만 명이 넘는 다단계판매원의 생계와 직결돼 있다고 인식하지 않는 한 바람직한 해법은 찾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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