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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후> 공제조합과 은행

  • (2024-01-04 17:39)

지금의 공제조합이 설립된 건 전부개정된 방문판매법이 지난 2002년 시행되면서부터다. 당시의 환불보증금 제도를 폐지하고, 소비자피해보상을 위한 ‘보험계약’, 금융기관과의 ‘채무지급보증계약’, 공제조합과의 ‘공제계약’ 중 하나의 계약을 의무적으로 체결하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출범한 게 바로 직접판매공제조합과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이다. 

이후 공제조합을 통해 다단계판매업체로 등록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여져 왔다. 과거 은행과 채무지급보증계약을 시도했던 사례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은행과 보험사 등이 다단계판매를 위험성이 높은 산업으로 봤기 때문에 실제로 성사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최근 들어 은행과의 계약을 통해 다단계판매업체로 등록한 사례가 늘고 있다는 건 다단계판매를 바라보는 금융기관의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화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데에는 기업 관계자들과 판매원들의 역할이 컸지만, 지난 20여 년간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고,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던 공제조합의 공적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최근 들어 공제조합이 회원사의 사업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경향이 있다거나, 공제조합 눈치를 보느라 블랙컨슈머가 요청하더라도 환불해주는 사례가 있다는 업체 관계자들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공제계약해지’라는 생사여탈권을 쥔 공제조합에 민원이 들어가면 압박감에 못 이겨 환불해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지난 12월 12일 열린 공정위 특수거래 분야 워크숍에서 다단계판매를 담당하는 한 지자체 관계자는 “현장에 나가보니 공제조합이 매월·분기 그리고 단기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게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업체들은 이것을 갑질이라고 표현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공제조합과 마찬가지로 다단계판매에 관한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는 업무를 하는 곳에서 오죽하면 이런 이야기를 꺼냈을까, 생각에 잠기게 한다. 

제도든 사람이든, 그때그때의 사정에 맞춰 변화하지 않으면 타성이 붙거나 본질 자체가 바뀌기도 한다. 지난 20년 동안 공제조합이 아니면 사실상 다단계판매 영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두 조합이 과두적인 단체로 변한 건 아닌지 한번은 짚어야 할 시점이다.

현재 은행과 채무지급보증계약을 통해 등록한 다단계판매업체 4곳 모두 공제조합과 공제계약을 시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제조합 입장에서는 이들 업체를 달갑게 볼 수는 없겠지만, 이들이 은행을 통해 다단계판매 영업을 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제조합이 극적인 쇄신과 변화를 도모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소속된 회원사들에게 공제조합에 남아 있을 명분과 가치에 대해서 보여줄 때가 아닐까?

나아가서는 일련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방문판매법에 있는 소비자피해보상보험계약 관련 조항을 손질할 필요도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된 무려 20년 전에는 적절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다단계판매에 관한 소비자피해보상보험계약 제도는 마치 자동차를 구매하기 전인데, 운전하다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자동차보험을 미리 들어놓으라는 말과 같다. 물건 팔 사람도 없고, 매출도 발생하지 않는데, 당장 소비자 피해가 어떻게 발생한단 말인가? 

그러므로 다단계판매의 창업과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는 해당 법 조항은 개정할 필요가 있다. 다단계판매업체를 최초 창업하는 경우에는 당장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소비자피해보상보험계약 체결, 자본금(5억 원)의 의무를 유예했다가 월 매출액, 판매원 수 등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을 때 이 의무를 부여하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 

이렇게 되면 영업을 개시한 이후 숨만 쉬어도 매월 1~2억 원이 나가는 신규업체들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고, 이러한 의무조항을 상당한 진입장벽으로 느끼고 무등록 다단계 영업을 벌이는 업체들의 사전영업에 대한 논란도 일부분 해소될 수 있다. 

현재 다단계판매, 방문판매 등 특수거래를 담당하는 지자체 관계자 등에 따르면, 방문판매로 신고한 후 다단계판매 영업을 벌이는 업체에 대한 단속이 쉽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진입장벽을 낮춤으로써 제도권 안에 들여놓으면 공정위나 지자체 등의 관리·감독 업무도 훨씬 수월해질 수 있을 것이다. 낡다 못해 누더기가 된 방문판매법은 다단계판매산업의 발전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산업 종사자들의 기본권마저 침해하고 있다. 이제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두영준 기자endudwns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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