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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오후> 자유를 가두는 감옥 '가격상한선’

  • (2024-04-11 17:37)

방문판매법에 가격상한선이 규정된 건 지난 1995년 법이 전면 개정되면서부터다. 당시 100만 원이 넘는 제품을 팔지 못하게 법으로 규정했고 2002년 130만 원, 2012년에는 160만 원으로 올랐다. 그런데 1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가격상한선은 160만 원이다. 2012년 이후 물가상승률, 국민총소득증가율을 고려했을 때 과연 이 가격이 현재까지도 적합한지 짚어야 할 때다. 

방문판매법 시행령에 따르면 공정위는 3년마다 ‘판매상품 등에 대한 가격 제한’에 대해 그 타당성을 검토해 개선 등의 조처를 해야 하는데, 공정위는 작년 1월 1일 해당 조항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하고 160만 원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런데 문득 정부가 기업의 상품 가격을 제한하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 맞는지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이는 다단계판매에만 적용되고 있고, 산업의 다양성을 가로막아 기업과 판매원들의 활동반경을 위축시키는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 웬만한 핸드폰, 냉장고, TV, 세탁기 등등이 200만 원을 훌쩍 넘기 때문에 거의 모든 다단계판매기업은 건강식품, 화장품, 생필품을 취급하고 있다. 테무, 쿠팡, 알리익스프레스와 같은 저가의 상품과 빠른 배송을 앞세운 온라인 쇼핑몰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에 방문판매법이 족쇄가 되고 있는 셈이다.

가격상한선이라는 규정이 생긴 이유는 후원수당을 미끼로 고가상품을 판매하는 등의 사행성을 방지하고, 강매식으로 판매할 경우 판매원, 소비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가의 상품거래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제정된 것이긴 하지만 ‘개별’ 상품에 대해서만 가격을 제한해 놓고, 수백,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묶음판매에 대해서는 규제하지 않아 ‘찢어진 그물’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묶음판매라는 건 가격상한선이라는 획일적인 규제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기도 하다. 미국에선 부동산과 여행상품, 청소 서비스 등 다양한 재화와 용역을 판매할 수 있지만, 한국은 여러 가지 규제가 연쇄적으로 작용하는 바람에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등으로 취급상품이 한정된 상황에서 내놓은 궁여지책이었을 것이다.

방문판매법은 다단계판매가 사행적이고 피해를 많이 발생시킨다는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만들어진 규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주 오랫동안 이렇다 할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시장이 상당 부분 안정화됐으므로 기업과 판매원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규제를 씌워야 할 때가 아닐까? 과거의 피해 사례를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과거의 피해 사례를 시장이 정화된 현재의 상황에 적용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니 말이다.

판매원들은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심지어 휴지 하나를 팔기 위해 제품의 성분, 특징, 효과 등 엄청난 양의 지식을 습득하고, 끊임없는 자기계발에 매진한다. 여기에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 그들과 대화하기 위해 학문, 사회, 문화 등 폭넓은 교양을 쌓는 노력도 덧붙인다. 이러한 사람들이 물건을 팔면서 과연 어떠한 사행적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후원수당을 많이 받아가는 게 사행성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스스로는 정의감과 대의명분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방문판매법의 가격상한선을 비롯해, 청약철회 기간 3개월, 후원수당 지급률 35% 등의 규정은 불법업체들이 불법을 일삼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고, 법을 준수하는 업체들은 불법으로 갈 수밖에 없게끔 내모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160만 원이 넘는 제품을 팔지 못하도록 한 규정은 아예 철폐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제품의 가격은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정하되, 똑같은 제품을 과도하게 구매하는 경우 공제조합에서 일시적으로 공제보증을 제한하는 등의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면 고가의 상품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의 예방책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누구든 노예 제도에 찬성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에게 직접 노예 생활을 시켜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는 격언을 남겼다. 불현듯 후원수당 지급률과 가격상한선의 제한을 찬성하는 이들의 월급을 제한하고 160만 원이 넘는 제품을 사지 못하게 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두영준 기자endudwns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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